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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T ISSUE(핫이슈)/HOT 사건사고

홍콩반환 이후 최대규모 103만 홍콩시위, 왜? 무엇때문인지 완벽정리

 

얼마전부터, '홍콩시위'라는 단어가 심심찮게 들리기 시작했다. 

 

'홍콩' 누구라도 한번쯤 가고싶은 야경이 아름답고 마카오를 옆에 두고 있는 관광도시이다.

 

그렇게 아름다운 곳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아편전쟁과 영국-홍콩, 100년 후 중국반환

홍콩시위에 대해 알고싶다면, 홍콩의 역사부터 알아야 한다.

 

과거 18세기 청나라 옹정제 초기, 영국은 중국에 아편을 밀수출하였고,

 

1780년 1000상자에 불과했던 아편량이1840년대 4만상자까지 기하급수로 늘어났다.

 

이에, 청나라의 도광제는 아편금지를 내리고 아편거래를 막으려고 하였다.

 

그에 대해 영국의 엘리어트는 1840년 육해군 4000명의 원정군을 이끌고 중국을 침략하였고,

 

아편전쟁에서 영국의 군사력에 속수무책으로 당한 중국은

 

'홍콩을 영국으로 넘긴다' 는 내용이 포함된 남경조약을 체결하였다.

 

 

 

이후, 홍콩은 100년이 넘는 동안 영국의 식민지로 유지되었고,

 

1980년대 영국 총리 마거릿 대처가 베이징을 방문하여, 1

 

984년 홍콩반환에 대해 합의함으로서, 1997년 중국으로 홍콩반환이 완료되었다.

 

하지만 이미 영국령으로 100년이상 살아왔던 홍콩인들에게 중국체제의 적용은 현실적으로 어려웠고

 

그로인해 '1국2제'가 시행된다. (중국 1국가내에 중국의 체제와, 홍콩의 체제로 2개체제 유지됨)

 

향후, 50년간 국방, 외교를 제외한 사법, 금융, 경찰 관세 제도가 그대로 유지된다는 내용이었다.

 

 

 

그렇다면 홍콩시위 발생이유는?

 

그렇다면 홍콩반환후 최대규모 103만 시위는 무엇때문에 발생하였는가?

 

그 시작으로 가장 많이 인용되는 것은 대만에서 발생한 20대 홍콩인 치정 살인사건이다.

 

홍콩인 찬퉁카이가 여자친구 판샤오잉과 함께 대만으로 놀러가서 치정문제로 살인이 일어났고

 

찬퉁카이가 역주변 공원에 시신을 유기하고, 홍콩으로 달아났다.

 

 

대만당국의 연락을 받은 홍콩경찰은 그를 체포하여 자백을 받아냈으나,

 

홍콩의 형법상 홍콩내에서 발생하지 않은 죄에 대해서는 처벌할 수가 없었다.

 

대만은 그를 자기들에게 넘겨주면 처벌하겠다고 하였으나,

 

그 역시 홍콩에는 송환법(범죄자를 타국가로 인도하는 법)이없기 때문에 일어날 수 없었고,

 

이에 대해 대만,중국, 마카오가 홍콩내에 송환법을 만들어야된다고 압박을 가하고,

 

홍콩정부 역시 송환법을 만들겠다고 발표하였다.

 

 

그런데 이에대해 홍콩시민들이 시위를 통해 거세게 일어났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큰 이유로 송환법이 만들어지게 되면, 중국의 압박으로 인해

 

홍콩내의 민주인사들이나 반중국 인사들이 중국으로 송환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 외에도 홍콩은 지금 부익부 빈익빈의 극심화로 인해,

 

젊은 청년들은 2~3평내의 작은 방에서 생활을 하는 등,

 

각종 사회적문제가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이러한 대규모 시위가 발생하였다.

 

 

이에 대해 홍콩당국은 정치, 종교관련 사범에는 적용하지 않고,

 

7년이상의 중범죄에 해당하는 경우만 적용하며

 

최종 송환여부는 홍콩법원이 결정한다고 설득을 하였으나,

 

홍콩시민들은 홍콩정부의 이같은 말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양측사이에 양보는 없는 상황이며, 한때 폭력적인 양상을 보이다가 최근 평화적 시위로 바뀌었다.

 

 

이와 관련하여 어떻게 진행될지는 모르나, 가장 중요한 것은 생명이기에

 

다치는 사람이 없도록 신중을 기하였으면 한다.